개웅마을은 개웅산의 동남쪽에 걸쳐있는 마을이었으며 지금의 개봉3동이다. 이 마을에는 창녕 조(曺)씨와 청주 한(韓많)씨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개웅초등학교, 개웅중학교를 비롯하여 개웅어린이공원, 개웅부동산 등의 상호가 쓰이고 있어 지금도 그 옛 이름이 이어지고 있다.
▶개웅마을(앞쪽)과 개봉2동 아파트단지(뒷쪽)
개웅마을 남쪽으로 목감천이 흐른다. 목감천은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서 발원하여 구로구와 광명시 사이를 지나 안양천으로 흘러든다. 발원지로부터 안양천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길이는 35.62㎞이다. 발원지 부근에 조선시대 때 목암사(牧岩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 경내에는 감나무의 개량 품종인 단감나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목암사의 ‘목(牧)’자와 감나무의 ‘감’자를 따서 마을이름을 목감리라 불렀으며 이곳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라 목감천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중 개봉3동 앞 구간을 개웅천 또는 개웅내깔이라고 하였으며 개봉2동 앞에서 안양천으로 합류하기 전까지를 개화천이라고 하였다.
▶목감천(좌측 광명시, 우측 개봉3동)
개봉3동 345-38에는 ‘개봉동과장미공원’ 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놀이터가 있다. 이 공원은 구로구가 2017년 6월 오규원(1941∼2007)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조성한 것으로 오 시인이 1971년부터 1973년까지 개봉동에 살 때 쓴 동명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오 시인의 시 '개봉동과장미'는 그의 시집 '순례'(1973)와 시선집 ‘사랑의 기교’(1975)에 실렸다. 오규원의 이 시는 삶의 터전인 개봉동에 핀 장미를 통해 희망을 노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봉동과장미공원
▶오규원 시인 시비
개봉동과장미 오규원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
오규원의 본명은 오규옥으로 1941년 경상남도 삼랑진에서 출생하였으며 1961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그 후 다시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이색적인 학력을 가진 시인이다. 1968년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하였고 여러 곳의 문학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오규원 시인은 만성 지병을 앓다가 2007년 2월 2일 6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오 시인은 의식을 잃기 직전 1월 어느 날 간병을 하던 제자 이원의 시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썼다고 하는데 이때 쓴 글귀가 다음의 32자라고 전해진다.
“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마지막으로 쓴 글귀 때문인지 오규원의 장례는 강화도 전등사 인근의 어느 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오규원의 개봉동 관련 시는 비오는 날 노점상 서민의 애환을 묘사한 ‘개봉동의 비’라는 것이 하나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