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각자 이름이 있듯이 땅도 이름을 갖고 있다. 이를 우리말로 땅이름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지명(地名)으로 쓰고 말한다.
구약성경 창세기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땅이름은 에덴(2장8절)이다. 이 에덴은 인류의 조상이라는 아담(2장19절)보다도 더 먼저 나온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고 나온다. 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 이처럼 신이나 사람이 살았던 곳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었다.
땅이름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길이 되었듯이 많은 이가 땅이름을 자꾸 부름으로써 그 이름이 굳어지고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제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물론, 사람들 입으로 전해지는 것과 현장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의 땅이름에 얽힌 여러 가지 사연을 찾아가는 여행을 같이 해 보고자 한다.
개봉지역 약사(略史)
개봉지역은 1963년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까지 개봉리로 불렸던 곳이다. 개봉리의 지명은 오류동역 남쪽에 있는 개웅산(開雄山)의 ‘개(開)’자와 양천구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매봉산(梅峰山)의 ‘봉(峰)’자에서 하나씩 따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이름이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에서 2009년에 발간한 서울지명사전에는 ‘양천구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골봉재의 봉자와 합성했다’고 나오는데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은 매봉산이므로 이 매봉산을 골봉재로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1800년대 후반까지 개봉지역은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에 속하였으며 갈탄(葛灘)으로 불리던 곳이다. 개봉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인 조선조 태종 때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부평도호부 관아가 지금도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부평초등학교 안에 있다.

▶부평도호부 관아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 337군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개봉지역은 인천부 부평군 수탄면(仁川府 富平郡 水呑面)으로 되었다. 다음해인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경기도에 속하는 부평군 수탄면 갈탄(葛灘)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부터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 개봉리가 되었다.
또한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부평군과 인천군(府內面과 多所面을 인천부로 하고 남은 지역) 일부를 합쳐 부평의 부(富)자와 인천의 천(川)자를 따서 부천군(富川郡)으로 개편할 때 부평군 수탄면 개봉리가 부천군 계남면(桂南面) 개봉리로 되었다. 계남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계양산(해발 395.4m)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부평부읍지도(1899년)
1931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05호에 의해 계남면이 소사면(素砂面)으로 바뀌었고 1941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253호에 의해 다시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개봉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서울시의 행정구역을 확장하기 위해 부천군 소사읍 일부를 서울시에 편입할 때 개봉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개봉동이 되었다. 새로 편입된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조례 제276호에 의해 동일자로 영등포구에 5개의 출장소를 신설하였는데, 이때 개봉동은 오류동, 천왕동, 항동, 온수동, 궁동, 고척동과 함께 오류출장소(梧柳出張所)에 속하였다. 당시 이 7개동 모두의 가구 수는 3,267호이고 인구수는 15,909명이었다.
1968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491호에 의해 오류출장소가 폐지되면서 개봉동은 영등포구의 직할동이 되었고 1977년 8월 29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1호에 따라 개봉1동과 개봉2동으로 나누어졌다.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영등포구에서 구로구가 분리 신설됨에 따라 구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413호 「동사무소설치조례」에 따라 개봉2동 지역은 개봉2동과 개봉3동으로 나누어졌다. 1994년 11월 고척동길과 남부순환도로를 경계로 개봉1동 지역이 개봉1동과 개봉본동으로 나뉘어졌다가 2008년 12월 개봉본동은 다시 개봉1동에 통합되었다. 개봉동지역이 1963년 서울시로 편입될 때는 1개동이었으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4개동으로 나누어지기도 했다가 개봉1,2,3동 3개동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개봉1,2,3동 지역 지도
2023년 4월 기준 구로구청의 주민등록 통계자료에 의하면 개봉지역 3개동 전체의 인구수는 36,212가구에 83,336명이다. 1963년 서울시 편입당시 개봉동, 오류동, 고척동, 온수동, 궁동 천왕동, 항동 등 7개동의 인구가 15,909명이었다. 개봉동 지역 인구만 따져도 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1967년경 개봉지역의 전체 인구수를 당시 동장이었던 분은 3,50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개봉동 지역의 인구는 56년 만에 23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