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동(高尺洞) -④
<땅이름 이야기>
능골
고척2동 야산 자락에 있던 자연마을로 이 일대에 1984년 고척고등학교가 세워지고 여러 개의 아파트 단지와 많은 주택이 들어서면서 예전 논밭이 있었던 시골마을의 모습은 모두 없어졌다. 덕의리 마을 위쪽에 있던 마을이다.

▶고척고등학교(학교 주위가 능골이다. 출처-두산백과)
고려시대 이곳에 능터를 잡으려고 했던 데서 능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능터를 잡지는 않았지만 잡으려 했다는 걸로 봐서 당시 이 지역에 혹시 명당자리가 있다고 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국에는 많은 능골(陵谷) 또는 능말(陵村)이 있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면 능이 있거나 능이 있었던 곳, 옛날에 능 자리를 잡았던 곳, 능같이 큰 묘가 있는 곳, 능을 쓸 만한 명당이 있는 곳 등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 능과 관련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능은 왕과 왕비나 그 자녀들인 왕족의 묘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능과 연관 지어 좋게 부풀려서 능골 또는 능말이라고 유래를 밝히고 있다.
능골은 자음동화 현상으로 인해 국물이 궁물이 된 것처럼 당초 는골에서 늠골로 다시 능골로 변했을 것이다. 즉, 는+골, 는골, 능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는’은 ‘늘어진’의 뜻으로 는골은 늘어진골의 줄임말로 볼 수 있는데 늘어진골은 산이 낮게 늘어진 모습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곳 능골도 능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주변 지형으로 볼 때 늘어진골이 변해서 능골이 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단혈(丹穴)고개
능골에서 고척고등학교를 지나 학교 뒤쪽에서 개봉1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마루의 흙이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 단혈고개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지금도 산자락에 간간히 드러난 붉은 흙을 볼 수 있다.
육본단지
세곡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단혈고개 방향의 높은 지대에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조성된 주택단지이다. 육군본부하고는 관련이 없고 육군 장교들이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육본단지로 불리다가 지금은 삼덕마을로 부른다.
가는골(細谷-세곡)
가는골은 좁고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세곡(細谷)이라고 썼다. 고척근린공원과 세곡초등학교 사이에 있던 마을로 육본단지와 인접해 있다.

▶세곡초등학교(가는골에서 딴 이름, 출처-두산백과)
가는 골은 마을 어르신이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가르마처럼 길이 좁아서 가는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남부순환로변의 서부트럭터미날 일대가 예전에는 공동묘지이었는데 그곳으로 장례 지내러 갈 때 마지막 가는 길이었다고 ‘가는 길 가는 길’ 하던 것이 가는골로 되었다는 것이다.
가는골 일대는 본래 포도밭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1972년 세곡초등학교가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지금은 단독주택이 빌라 건물로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우렁바위
고척2동과 양천구 신정3동 사이의 계남근린공원 내 신정배수지 옆에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5개의 바위가 있다. 이들 바위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 울음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려 울음바위 또는 한자로 명암(鳴巖)이라고 한다. 울음바위가 변해서 우렁바위가 된 것으로 보인다. 길마처럼 생겼다 해서 길마바위라고도 하는데 길마는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을 말한다.
▶우렁바위
우렁바위 이야기는 한글학회에서 1966년 발행한 ‘한국지명총람’ 오류출장소 고척동 편에 나온다. 우렁바위가 있는 곳을 우렁바위산이라고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고척2동 덕의리 마을에 있는 ‘여계묘역’ 뒷산이다. 원래는 구로구에 속한 우렁바위산의 정상부에 있던 것을 1990년 신정배수지 공사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지금은 양천구에서 명소로 관리하고 있다.
▶우렁바위 안내판(양천구)
현재 우렁바위가 있는 계남근린공원은 구로구와 양천구의 경계지역으로 관할구역이 일부 겹친다. 우렁바위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구로구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초 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옮긴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이제 새삼 구로구 관할 구역으로 옮기자고 주장하기에는 양쪽 구청과 주민들의 의견 차이가 예상되므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구로구가 우렁바위를 관리할 수 있도록 연고권을 주장해 보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렁바위에서는 1988년까지만 해도 매년 10월 초하루에 마을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도당제(都堂祭)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도당제는 이 바위가 양천구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2014년 음력 3월 3일 고척2동 주민들이 도당제를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1980년대 양천구(당시 강서구) 목동아파트단지를 조성할 때 많은 흙이 필요했다. 이때 우렁바위산과 고척근린공원을 만들기 전에 있던 야산을 깎아 파낸 흙을 실어다가 매립했다고 한다.
고인돌
고척고등학교 뒷산(고척2동 산12-1)에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 한 기가 있다. 주위에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어 밖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이 고인돌은 1998년 서울대학교 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그 후 관련 학자들의 조사에서 『덮개돌의 주변에 덮개돌과 동일한 형태의 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고척동에 있는고인돌
고인돌(支石)은 선돌(立石)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대부분 선사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 있는 고인돌은 기반식 지석묘로 추정하고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가로 190㎝, 세로 105㎝, 높이 28㎝이고 굄돌은 길이 50㎝, 폭 12㎝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수량도 적지만 서울지역에는 고인돌이 흔치 않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연구 자료로 쓰일 수 있는 소중한 유물로 평가 받고 있다.
서울에 있던 고인돌들은 급속한 도시개발에 따라 거의 멸실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정릉동, 개포동, 우면동, 양재동, 원지동 등 일부 지역에 소수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